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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미술전시] 클림트와 에곤실레, 내가 굳이 많은 인파를 뚫고 시간과 비용을 들여 전시회를 다니는 이유

by 램프의요정지니 2025. 2. 16.

1. 주차와 티켓

작년 연말부터 벼르고 별렀던 미술전시다. 여건이 되면 평일에 가고 싶었지만,, 여건이 안 되는 관계로 일요일 주일예배 후 11시로 티켓예약을 했다. 티켓링크에서 예매 후 바코드를 카톡으로 받았다면, 티켓발권 없이 바로 입장가능하다. 어리바리 한 5분 정도 줄 서있었던 1인. 클림트와 에곤실레의 작품만 있는 줄 알았는데, 그 외 4명의 작가들의 작품이 있었다. 좋은 것도 아니고 싫은 것도 아니여. 아쉬울 뿐이여.#국립중앙박물관주차꿀팁 은, 일단,, 시간이 제일 크다. 주말이라면 오전타임이 조금 여유로운 듯하고, 야외주차장이 열려있다면 야외주차장 추천! 야외주차장도 생각보다 넓다. 주차면이 굉장히 좁아서 불편할 뿐

원래 에곤실레(맨위 가운데 책보는 남자) 건너편에 클림트 자리인데, 스페인 독감으로 사망하자 추모의 의미로 빈자리로 비웠다고 한다

내가 굳이 비싸고 사람 붐비는 미술 전시회를 다니는 이유.

내가 이렇게 많은 인파들과 함께  황금 같은 주말에 시간과 비용을 들여 미술전시를 굳이 다니는 이유는 뭘까. 생각해 본다.오늘 하루가 너무 피곤하여, 평소 낮잠도 안자는데 기절하듯이 낮잠을 자고 일어났다. 그런데도 미술전시회 다녀온 건 후회는 안된다.. 나 왜이러는 걸까? 생각 해 봤다.

유명한 작가의 전시회에서는 그 작가의 독특한 세계관을 직접 마주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일단 의미가 있다. 또한, 일반적으로 '특별한 것'이나 '한정된 것'에 대한 욕구가 사람들 안에 존재한다. 유명한 전시회는 그 자체로 희소성을 가지며, 이로 인해 사람들은 그 경험을 놓치지 않으려는 마음이 생긴다. 예를 들어, ‘한정된 기간 동안만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사람들이 전시회를 찾게 되는 것 아닐까. 이는 인간의 ‘소유욕’과 ‘결핍의 법칙’이 결합되었겠지. 이런 이유로 나는 굳이 미술 전시회를 다닌다. 언제 에곤실레 그림을 내가 볼 수 있겠는가? 기약이 없다.

미술 전시회, 특히 유명한 전시는 문화적 상징성을 지닌다. 현대 사회에서는 예술을 이해하고, 그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능력이 일종의 '문화적 자본'으로 작용할 수 있다. 회사동료가 미술을 화두로 이야기를 하면 거들정도는 되는 것 같다. 관심도 있고, 좋아도 하니까. 한마디로 아는체 하기."어~ 나도 그거 알아요. 나도 다녀왔죠. 얼리버드로 예매했어요." 이런식이다. 

내가 사람들이 붐비고 비싼 전시를 찾는 이유는 그 미술 작품을 소유하는 느낌을 갖기보다, 그 작품을 '경험'하고 ‘문화적 자격지심’을 해소하려는 심리가 작용할 수 있는 거 아닐까. 예술적 소양을 드러내고 싶어 하는 욕구도 하나의 이유일 듯.

오늘을 계기로 나를 한번더 돌아본다. 잘 살고 있는거니?

비엔나박물관 입구에 그려서 유명해 졌다는 클림트의 그림(위), 쇤브룬에서(카를몰 1861-1946, 1911년 패널에 유화, 아래)
산맥(클로만 모제 1868-1918, 왼쪽), 오른쪽도 클로만 모제의 작품

 

역작들을 실제로 봤다는 것에 의미 있다. 에곤실레를 알게 된 후부터, 왠지 모르게 에곤실레에 관심이가고 끌렸다. 그래서 더 더욱 이번 미술전시에 꼭 가고 싶었던 거고. 

에곤 실레(Egon Schiele)는 20세기 초 오스트리아의 대표적인 표현주의 화가로, 독특한 스타일과 강렬한 감정 표현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의 작품은 인간의 내면과 감정을 탐구하는 데 중점을 두었으며, 종종 과감하고 도전적인 자세로 그려졌다. 블로그 포스팅을 준비하면서 그에 대한 배경과 주요 특징들을 다루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아래에 도움이 될만한 내용들을 정리해 봤다.


에곤 실레(Egon Schiele) - 20세기 표현주의의 아이콘

1. 에곤 실레의 생애

  • 출생: 1890년, 오스트리아 Tulln
  • 사망: 1918년, 스페인 그라츠 (사망 당시 28세)
  • 실레는 짧은 생애를 살았지만, 그가 남긴 작품은 현대 미술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
  • 그의 작품은 당대 사회에서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고, 그가 추구한 예술적 자유는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잘생긴 천재화가. 요절해서 너무나도 아깝다.

2. 예술적 특징

  • 표현주의: 실레는 인간의 감정을 강조하고, 현실을 왜곡하여 내면의 심리적 복잡함을 표현하는 데 주력했다. 그의 그림에서 인물들은 종종 왜곡되고 비틀어진 형태로 그려지며, 이는 감정의 격렬함과 고독을 상징한다.
  • 자화상: 실레는 자화상을 많이 그렸다. 그의 자화상은 그의 정신 상태와 내면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작품들로, 종종 강렬한 눈빛과 왜곡된 몸짓이 특징적이다. 특히 손짓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사진으로 본 에곤실레 잘생겼... 그래서 더 자화상을 그릴 맛이 나지 않았을까도 싶다.
  • 성적인 테마: 실레는 종종 성적인 이미지를 그림에 담았다. 이는 당시 사회에서 큰 논란을 일으켰으나, 그가 인간 본능과 욕망을 탐구하는 방식으로 해석되기도 했다.

에곤실레의 국화(왼쪽), 과장된 꽃과 장식의 배경(오른쪽)

3. 대표 작품

  • 《자화상 (Self-Portrait)》: 실레의 대표적인 자화상 중 하나로, 그의 강렬한 감정이 그대로 드러난다. 과감한 색채와 왜곡된 형태가 인상적이다.
  • 《죽음과 소녀 (Death and the Maiden)》: 이 작품은 죽음과 삶의 대조적인 테마를 다루고 있다. 성적인 요소와 죽음의 이미지가 결합되어 강렬한 감정을 자아낸다.
  • 《누드와 어린이 (Nude with Child)》: 성과 모성의 관계를 다룬 작품으로, 그의 작품에서 자주 나타나는 인간의 본능과 복잡한 감정을 표현한 예다.

4. 에곤 실레의 영향

  • 실레는 표현주의 미술의 발전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으며, 그의 작업은 현대 미술과 초현실주의 미술가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 그가 남긴 작품들은 감정의 복잡성과 인간 본능에 대한 탐구로 여전히 많은 미술 애호가들 사이에서 찬사를 받고 있다.

5. 에곤 실레와 사회적 논란

  • 실레는 종종 성적인 이미지와 왜곡된 신체를 묘사하여 당대 사회에서 논란을 일으켰다. 그가 그린 누드 그림들은 당시 사회적 기준을 넘어서기 때문에 법적 문제에 휘말리기도 했다.
  • 그러나 그의 작품들은 전통적인 미술의 경계를 넘어서는 창의적인 시도로 평가받고 있다.

6. 결론

에곤 실레는 그의 짧은 생애 속에서 예술적으로 많은 실험과 혁신을 시도한 작가였다. 그의 작품은 단순히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넘어서, 인간 존재의 복잡한 감정과 심리를 탐구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에곤 실레의 작품을 통해 우리는 인간의 내면을 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

빛과 색의 마법, 모저의 꽃 그림(클로만 모저, 왼쪽), 레장(르 샤무세르산)(클로만 모저, 오른쪽)
구름습작(클로만 모저, 왼쪽), 점심식사<수프> 두번째 그림(알빈 에거-리엔츠 오른쪽)

이렇게 생활용품에도 관심을 갖고 만드었던 작가도 있었다.

그 외의 풍경 사진
역시 그 외의 작품들
특히 좋았던 왼쪽 작품. 에곤실레

1915년에 결혼하고, 1918년도 아기의 출산을 기다리다가,,, 스페인독감으로 와이프를 보내고, 3일 뒤 에곤실레도 스페인독감으로 이생을 마감했다고 하니. 안타까울 뿐이다. 전시 마지막 부분에 에곤실레의 와이프 1917 에디트 하름스를 위에서 내려다본 구도의 누워 있는 여성 그림이 인상적이었다.  에곤실레가 결혼하고 나서 뭔가 안정된 모습을 보이고, 이 작품으로 1918년도에는 경제적 성공까지 거뒀다고 하는데,, 그해 10월 모두 이생을 마감하다니.

에곤실레의 풍경화 역시 멜랑꼴리하구만
드로잉 왼쪽(에곤실레), 오른쪽(클림트)

에곤실레가 특히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클림트. 두 작가 모두 누드드로잉, 누드화를 많이 그린 공통점이 있는 듯하다. 클림트의 드로잉은 여성의 굴곡진 곡선이 두드러지는 반면, 에곤실레는 뒤틀어진 드로잉이 인상적이었다. 전시 순서 중에 클림트와 에곤실레의 드로잉화만 모아 놓은 룸도 있어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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